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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2010년 전에는 나의 가족은 4인 가족이었다. '적어도'라는 낱말을 굳이 붙인 이유는 2010년 이후에 오랫동안 지병을 앓던 엄마가 돌아가셨고 그 후로 나의 가족은 각자 독립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은 이러하다. 


우선 우리 네 식구가 있고 외가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었다. 친가 쪽에는 할머니만 계셨다. 물론 할아버지도 계셨겠지만 아빠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하니 내겐 존재감이 없는 분이다. 제사 때나 사진으로 뵈었을 뿐. 우리는 서울에 살았고 외가는 경상북도 어디 쯤에 있는 진짜 시골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마을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어느 집에서 소소하게 물건을 떼다 파는 진짜 구멍가게가 있었다.



음식인문학 - 10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외가는 농사를 지었고 우리가 외가로 가야만 식재료를 보따리 보따리 싸서 주시곤 했다. 요즘처럼 택배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 가기가 워낙에 힘든 곳이라 그런지 시집간 딸, 그러니까 이모들이나 우리 엄마가 친정으로 김장을 하러가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고 외할머니가 김치를 보내오신 적도 없다. 내 기억으로는 엄마는 그냥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김장을 했던 것 같고, 나중에는 마트에서 사먹었다. 친가 쪽에서도 김장 때문에 모이진 않았던 것 같다. 추석이나 명절, 그리고 집안 행사가 있을 때나 갔지 그 외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나의 가족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음식 인문학 1장이 바로 '식구론'이기 때문이다. 


책에 의하면 집이라는 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나는 생존에 필요한 공간으로써의 집이고 또 하나는 최소한의 사회공간으로써의 공간을 의미한다. '사회공간'이라 표현한 건 그 속에 사회, 경제적인 것들이 모두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은 학술용어로 가내집단이라 부르고 이는 곧 공식(共食)집단이라고 한다. 그러니 같이 밥 먹는 사이이므로 식구(食口)라는 단어가 꼭 맞는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식구. 이 얼마나 재미있으면서 포괄적인 단어인가. 저자도 이야기하듯 식구라는 개념은 혈연관계가 아니여도 된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같이 밥 먹는 사이. 그거면 되는거다. 나는 혈연관계에 집착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면에서 식구라는 단어가 참 좋다.


하여간 이 식구의 관계는 집이라는 공간의 변화에 의해서 동시에 변화를 갖는다고 한다. 물론 집이라는 공간의 변화는 정치경제적일 것이다. 그래서 기와집에 살았을 당시에는 부엌, 찬장, 우물, 장독대, 광이 서로 결합해 하나의 기능을 유지한다. 즉, 음식이 나오는 구조이다. 식재료를 씻고 조리하는데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우물, 장이나 김치 등을 저장하는 장독대, 식재료를 보관하는 광, 그리고 조리기구와 식기 등을 보관하는 찬장. 음식을 조리하는 부엌.


잠시 내가 어렸을 때 방문했던 외가를 떠올려본다. 


부엌, 찬장, 우물, 장독대, 광이 모두 있었다. 부엌엔 찬장, 부뚜막, 아궁이가 있었다. 외할머니는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무쇠솥에 밥 등을 지으셨고 그 옆에 찬장도 있었다. 부엌 아궁이 한 편에는 쪽문이 하나 있었는데 거긴 증조할머니 방과 연결되는 문이었다. 할머니는 밥상에 밥을 차려 쪽문을 통해서, 혹은 부엌문을 통해 상을 가져와 대청마루에서 다같이 모여 밥을 먹었다. 아, 할아버지는 안방에서 독상을 받으셨던 것 같다.




이러했던 집의 구조들이 발전을 하면서 점차 아파트, 혹은 그 비슷한 형태로 바뀌기 시작한다. 내 기억에도 외가집은 어느 순간부터 아궁이를 사용하지 않고 가스렌지로 대체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후 몇 년 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 기억 속 외가집의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도 푸세식 그대로였다.


하지만 보통은 부엌을 아예 폐쇄하거나 사용을 거의 하지 않으며 마루였던 공간을 막으면서 그 안으로 부엌이 들어갔다고 한다. 싱크대와 냉장고 등이 우물, 찬장, 광의 기능을 대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부엌은 (대체적으로) 여성의 공간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거실과 연결되면서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곳으로 변화했다. 사회적 변화와 맞물렸을 것이다.


그러나 1950년 이전에 태어나 농촌에서 살던 부모가 있는 집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식재료를 어느정도 공급하고 있고 특히 김장 때는 김치를 담가 자녀들에게 공급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반면에 1950년대 이후에 태어난 여성들은 그 전 세대와 달리 음식조리에 대한 것들을 많이 물려받지 못했다고 한다. 급격한 경제발전과 여성의 사회 참여가 시작되면서 그들은 산업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 역시 1950년대 이후에 태어나셔서 그런지, 1970년대에는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일을 하셨고 그 이후에 다양한 가공식품, 외식업체들이 생겨나면서 집에서 굵직굵직한 요리를 하지 않으셨던 듯 하다. 하기사 외가집이 시골이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도시에서 자취를 하다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취직을 했으니 외할머니로부터 음식조리법을 전수받을 시간은 없었던 듯 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보다 더 전수를 받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들만 보더라도 음식의 변화에도 사회, 경제, 심지어 정치적인 흐름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음식은 그 속의 생존의 도구로, 혹은 사회, 정치적인 관계에 보조적인 역할로 늘 존재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1장 식구론 마치고 있다.



“식구를 키워드로 하여 한 사회의 음식문화가 지닌 양상을 살피는 연구 역시 상당한 의의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식구론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는 바로 음식인문학을 시작하는 출발선이 된다.” 


음식인문학 68p.



이런 것들을 보면 우리는 거대한 흐름 속의 하나의 점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에는 우연도 분명 작용을 하지만 현재가 만들어진 건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 저마다의 작동(생각)과 세력의 힘(정치), 그리고 세계의 흐름 등이 만들어내는... 앞으로는 그 거대한 흐름을 계속해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음식인문학 - 10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이 글은 [ 위드푸드 ]에 동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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